[투데이광주전남] 정성환의 문화역사이야기3 = 이번 정성환의 문화역사 이야기는 광주 '포충사'(2) 「공간 구성편」으로 '포충사' 경내에 대한 이야기다.
포충사는 호남의 대표적 호국선열 유적지로 꾸며진 사우(祀宇)로 경내에는 크게 구사당과 신사당으로 이뤄져 있다.
<구사당>은 임진왜란이 끝난 1601년(선조 34) 고경명 선생의 충의(忠義) 정신을 기리기 위해 사우를 건립하고, 선조 임금에게 포충(褒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전국서원 대다수가 철거되었으나, 호남에서는 정읍의 무성서원,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훼철 되지 않았던 호남의 3대 서원 중 하나다.
<구사당 동재와 서재>1978년부터 1980년까지 문화유적지 정화사업으로 구사당을 보수하면서 충효당 · 청사영당 · 전사청 · 고직사 등은 철거되었으나, 사당 · 동재 · 서재 · 내삼문 · 외삼문 등은 본래의 위치에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신사당(포충사)에는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정화사업으로 건립한 신사당 경내에는 사당과 정기관, 외삼문, 내삼문 등이 있다.
신사당(포충사)에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순절한 고경명 선생을 주벽으로 제향하고 동쪽으로는 고종후, 안영, 서쪽으로 고인후, 유팽로를 배향하여 5인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포충사 정화기념비>는 1978년부터 3년간에 걸쳐 호남의 대표적 호국선열 유적지 정화사업으로 포충사를 건립하고 정화기념비를 세웠다.
<정기관>에는 현판문 3매, 고문서 3매, 제봉 고경명선생의 유품, 목판, 의병 창의에서 순절까지의 기록화 3점 등이 소장 되어있으며 고경명문적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어있다.
고경명문적은 명문 2점, 입안문 1점, 교지 4점, 유묵 2점으로 되어있다. 명문은 1601년 나라에서 고경명 부자를 위해 포충사를 지어 사액을 내리자, 고경명의 아들들이 감격하여 자신들의 논밭과 노비를 포충사에 헌납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입안문은 보통 논과 밭을 사고팔 때 관청에서 인가하는 문서인데, 이 문적에 포함된 입안문은 고경명 가문에 5 결의 논밭을 내리는 것을 관청에서 인가한다는 증명서이다. 교지는 고경명이 문과에 급제했을 때 받은 교지, ‘충렬공’이라는 시호를 받을 때의 교지, 고인후와 고종후가 증직 될 때의 교지이다. 유묵은 고경명이 직접 쓴 격문과 ‘세독충정’(世篤忠貞)이라는 휘호 2점이다. 고경명문적은 충(忠)과 효(孝)를 다한 가문에 대한 국가의 예우, 선조들의 충의정신(忠義精神)을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제봉집>은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국역 제봉전서』 라는 제목으로 본집, 속집, 유집 외에 유서석록, 정기록, 제하휘록, 제봉연보, 포충사지 등을 모두 합해 상·중·하 3책으로 출판되었다.
<정기록>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고경명과 맏아들 종후, 둘째아들 인후 등 삼부자의 충효정신과 절의정신 및 그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고경명의 넷째아들인 고유후가 『정기록』으로 편찬하였다. 그 후 ‘고인후’가 여러 문인에게 서문과 발문을 받아 1608년(선조 41) 태인군수로 재임하면서 목판본 1책으로 증보, 간행하였다. 책의 이름을 ‘정기록’이라 한 것은 중국 송나라의 충신 문천상의 「정기가」에 비유해서 이 책의 서문을 지은 윤근수가 두 글자(정기)를 따서 명명한 것이다. 윤근수, 이덕형, 이항복, 신흠 등 당대의 명현들이 서문과 발문을 지었으며, 수록 내용은 격서와 통문, 의병장들의 서한, 저자의 연보와 신도비명, 묘갈명 등이다.
<마상격문>은 임진왜란 당시 1592년 6월 북상하던 중 전주에 이르렀을 때 임진강에서 관군이 왜군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각 도의 수령과 백성, 군인들에게 보낸 격문으로써 말 위에서 작성하였다 하여 ‘마상격문’이라 불리는데, 많은 식자층이 감동하여 호남지역의 많은 의병이 고경명의 휘하에 모여들었다.
<제봉문집목판>은 고경명의 막내아들 청사 고용후가 1617년(광해군 7) 남원 부사로 있을 때 판각하였다. 이 목판은 개인 문집 목판으로써 인쇄기술과 문학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문화재로 평가받는다.
<호남순국열사비>는 구사당 앞에 있다. 이 비석은 높이 190cm, 폭 50cm로 앞면은 호남순국열사비 뒷면은 고광순, 황현 선생 등 한 말 의병장 2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석은 이혁 전 전남대 교수 등이 참여한 ‘호남순열모의계’가 1951년 세운 것이다. 조선 시대 말기~대한제국기의 항일 의병활동을 한 호남지역의 순국열사를 추모하기 위해서 세운 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