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사이야기] 광주 풍암정(楓岩亭)을 찾아서
상태바
[문화역사이야기] 광주 풍암정(楓岩亭)을 찾아서
  • 정성환 전문기자(광주시 문화관광해설사)
  • 승인 2024.01.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 무등산 원효계곡에 자리...단풍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명소'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아우 풍암 김덕보(楓岩 金德普, 1571~1621)가 세운 정자

김덕보 가문의 충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큰형 김덕홍, 둘째 형 김덕령 등 삼 형제...광주 ‘의열사(義烈祠)’ 배향

광주 무등산 원효계곡에 자리해...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명소 '각광'

풍암정(楓岩亭)/광주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5호. /정성환 기자

[투데이광주전남] 정성환의 문화역사이야기(83) = 광주광역시 무등산 원효계곡에는 풍암정(楓岩亭)이 세워져 있다. 이 정자의 주인은 조선 시대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忠壯公 金德齡, 1567~1596) 장군의 아우 풍암 김덕보(楓岩 金德普, 1571~1621)다. 이번 이야기는 수목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풍암정을 찾아서다.

원효계곡의 풍암정(楓岩亭). /정성환 기자
원효계곡의 풍암정(楓岩亭). /정성환 기자
풍암정(楓岩亭) 가는 길. /정성환 기자
풍암정(楓岩亭) 가는 길. /정성환 기자
풍암정(楓岩亭) 이정표. /정성환 기자
풍암정(楓岩亭) 이정표. /정성환 기자

◆ 풍암 김덕보(楓岩 金德普, 1571~1621)

풍암 김덕보의 본관은 광산, 호는 풍암으로 광주광역시 충효동에서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은 김덕보 가문을 멸문지화로 만든 비극의 역사였다. 그의 큰형 김덕홍(金德弘)은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의 의병부대에 가담해 금산전투에서 순절했고, 작은형 김덕령(金德齡, 1567~1596)은 조선 의병 총수로서 많은 공훈을 세웠음에도 이몽학의 반란에 연루되어는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옥사(獄死)했다.

이에 한 맺힌 김덕보는 의병활동을 그만두고 지리산에 은둔하며 지내다 가문의 묘를 돌보기 위해 고향인 광주로 돌아왔다. 이후 무등산 원효계곡에 풍암정(楓岩亭)을 짓고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에 전념하며 노후를 보내게 된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김덕보(金德普)는 보성 출신 유생 은봉 안방준(隱峰 安邦俊, 1573~1654)과 뜻을 함께하며 의병을 일으켰으나 노환으로 출정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785년 정조임금은 김덕보 가문의 충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김덕보를 ‘집의’에, 큰형 김덕홍은 지평에 증직 하고 둘째 형 김덕령에게는 충장공(忠壯公)이란 시호를 내리고 김덕보의 삼 형제 모두 광주 ‘의열사(義烈祠)’에 배향하게 했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의열사(義烈祠)’는 철거되었다.

현재 그의 묘소는 충장사(忠壯祠) 뒤편 가족묘에 안장되었다.

풍암정(楓岩亭)/광주시 문화재 자료 15호. /정성환 기자
풍암정(楓岩亭)/광주시 문화재 자료 15호. /정성환 기자
풍암정사(楓岩精舍). /정성환 기자
바위에 새겨진 풍암(楓岩). /정성환 기자
바위에 새겨진 풍암(楓岩). /정성환 기자
제봉 고경명 편액. /정성환 기자
제봉 고경명 편액. /정성환 기자
석천 임억령 편액. /정성환 기자
석천 임억령 편액. /정성환 기자
정홍명(鄭弘溟)이 쓴 풍암기(楓岩記) 편액. /정성환 기자
정홍명(鄭弘溟)이 쓴 풍암기(楓岩記) 편액. /정성환 기자
원효계곡. /정성환 기자
원효계곡. /정성환 기자

◆ 풍암정(楓岩亭)

풍암정(楓岩亭)은 광주 무등산 자락 원효계곡에 자리하고 있으며 풍암(楓岩)은 김덕보가 그의 호(楓岩)를 따서 붙인 정자 이름으로 단풍과 바위가 어우러진 원효계곡 일대의 수려한 풍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풍암정(楓岩亭)으로 가는 길목은 가을이 되면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평평하면서도 운치가 있는 골목길이다. 풍암정(楓岩亭)은 원효계곡 위에 돌을 쌓아 축대를 만들고 그 축대 위에 도리 주춧돌에 기둥을 세워 정면과 측면 모두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의 거실 1칸을 제외한 좌우 바닥은 판자 마루로 되어있다.

풍암정(楓岩亭) 건물 안쪽에는‘풍암정사(楓岩精舍)’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정자 앞 커다란 바위에는 ‘풍암(楓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정자 내부는 우산 안방준, 석천 임억령, 제봉 고경명, 기암 정홍명 등 당대 이름있는 선비들이 풍암정의 아름다운 절경을 한 편의 시로 담아낸 편액이 걸려있어 당시 풍암정 주변의 경관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풍암정(楓岩亭) 주변의 산세는 무등산 원효계곡의 기묘한 형태의 기암괴석 사이로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물과 수십 그루의 노송, 각종 야생화가 사방으로 둘러있으며 특히 그사이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풍암정(楓岩亭)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빼닮은 모습이다.

송강 정철(1536~1593)의 넷째 아들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 1592~1650)은 ‘풍암기(楓岩記)’에 “원효계곡의 맑은 물이 흐르고 천하일품의 뛰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는 풍암정 주변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아주 은밀한 곳으로 무등산의 어느 곳이라 할지라도 모든 면에서 이곳을 따를만한 곳이 없으며,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기암괴석의 사이마다 100여 주 단풍나무가 끼어있어 흐르는 계곡의 물빛이 붉을 정도로 무성하다”라며 원효계곡 일대의 단풍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를 ‘풍암(楓岩)’으로 표현했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