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엔 오곡문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 사이로 제월당(齊月堂), 광풍각(光風閣), 대봉대(待鳳臺) 등 남아 있어
송순, 김인후, 임억령, 고경명, 기대승, 정철 등..."조선 시대 별서원림(別墅園林) 가운데 최고는 소쇄원(瀟灑園)”이라 칭송
[투데이광주전남] 정성환의 문화역사이야기(78) = 전라남도 담양군에는 자연미와 인공미가 조화를 이루며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를 담고 있는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별서정원(別墅庭園) 소쇄원(瀟灑園)이 있다. 이번 이야기는 담양 소쇄원 이야기 제2편 소쇄원(瀟灑園)의 공간구성이다.
양산보(梁山甫, 1503~1557)는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죽임을 당하자 벼슬의 뜻을 접고 고향 지석동 창암촌으로 내려와 소쇄원(瀟灑園)을 세우고 은둔의 삶을 살았다.
[제2편] 소쇄원(瀟灑園)의 공간구성
소쇄원(瀟灑園)의 공간은 1755년 만들어진 판화 「소쇄원도」와 1548년 하서 김인후가 지은 시 「소쇄원 48영」에 잘 나타나 있어 그 당시 ‘소쇄원’의 원형을 추정할 수 있다.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의 아들 자징(1523~1594)과 자정(1527~1597)에 의해 ‘고암정사’와 ‘부훤당, 10여 동의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최고의 별서원림으로 완성되었는데, 정유재란(1597년) 때 ‘고암정사’와 ‘부훤당’ 등 건축물은 불에 타 소실되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지금의 ‘소쇄원’은 양산보의 5대손 ‘양택지’에 의해 보수된 것으로 계곡을 중심으로 오곡문(五曲門)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 사이로 제월당(齊月堂)과 광풍각(光風閣), 대봉대(待鳳臺)가 남아 있다.
당시 ‘소쇄원’을 방문했던 송순, 김인후, 임억령, 고경명, 기대승, 정철 등 호남 출신 명사들은 “조선 시대 별서원림(別墅園林) 가운데 최고는 소쇄원(瀟灑園)이다”라는 시를 남겼고, 선비들의 올곧은 절의(節義)가 소쇄원(瀟灑園)의 아름다운 풍광을 품고 조화를 이루며 숨 쉬고 있기에 “소쇄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원림(園林)이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제월당(齊月堂)
소쇄원(瀟灑園)의 풍광은 어느 땅 하나도 손댄 것이 없다. 언덕을 깎은 곳도 없다.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언덕이 있고 물이 흐르며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 소리가 들린다. 이것이 비 갠 하늘엔 밝은 달이 떠오르는 신비의 세계를 품고 있는 제월당(齊月堂)이다.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집인 제월당(齊月堂)은 앞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소쇄옹이 거처하며 학문하던 곳이다. 제월당(齊月堂)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제월당에는 소쇄원의 풍광을 노래한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48영」을 비롯해 임억령의 한시 「소쇄정」, 고경명, 김성원, 정철의 한시, 송순, 양응정 기대승의 만시(輓詩) 편액이 걸려 있다.
호남 유학의 대가 하서 김인후(金麟厚, 1510~1560)는 양산보(梁山甫)와 가장 절친한 사이로 양산보의 아들 양자징(梁子澂,1523~1594)이 그의 사위였다.
하서 김인후(金麟厚)는 이러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연못의 물고기가 알아볼 정도로 소쇄원(瀟灑園)을 자주 찾았으며, 이러한 연유로 김인후는 1548년 소쇄원(瀟灑園) 완공을 기념하여 지은 시(詩), 소쇄원48영(瀟灑園四八詠)을 남기게 된다.
◆ 광풍각(光風閣)
광풍각은 소쇄원을 가로지르는 계곡 옆에 세워진 정자로 소쇄원의 중심건물이며 손님을 맞이하던 공간인 사랑채이다.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광풍각(光風閣)은 앞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광풍각(光風閣)은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고, 1614년 양천운(양산보의 손자)에 의해 복원된 건물이다. 현판 광풍각(光風閣)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썼다.
제월당(齊月堂)과 광풍각(光風閣) 정자 이름은 소쇄원이 조성된 의미를 잘 알려준다. 광풍제월(光風齊月)은 중국 송나라 시대 유학자 ‘황정견’이 주희(朱熹)의 스승인 ‘주돈이’이를 생각하며 쓴 시(詩) “흉회쇄락여광풍제월(胸懷灑落 如光風霽月)”에서 유래한 것으로 “가슴에 담은 뜻의 말고 맑음이 마치 비 갠 뒤 부는 청량한 바람과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 같다”에서 따온 이름이다.
‘주돈이’를 닮고자 했던 양산보는 ‘황정견’의 시(詩)에 나오는 “청량한 바람과 맑은 달”을 뜻하는 제월(齊月)과 광풍(光風)을 인용해 소쇄원(瀟灑園)의 건축물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처럼 ‘양산보’는 자연을 벗 삼아 은거하면서도 좋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고픈 꿈이 있었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소쇄원(瀟灑園)을 지은 것이라 한다.
광풍각(光風閣)에는 소쇄원의 1755년도 모습을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소장되어 있어 그 원형을 추정할 수 있다.
「소쇄원도(瀟灑園圖)」는 양산보가 조성한 원림(소쇄원)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목판화로 오곡문(五曲門)을 통해 흐르는 계곡을 중심으로 건물과 연못, 담장, 석축, 수목의 입면을 사방으로 눕혀서 그리는 기법으로 755년(영조 31) 제작했다.
◆ 대봉대(待鳳臺)
삿갓 모양으로 사방 1칸의 초가지붕으로 되어있는 현재의 대봉대는 1985년경에 재건된 것으로 대봉대는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대를 쌓고 정자를 지은 것이라고 한다.
“봉황처럼 소중한 손님을 기다린다”라는 뜻의 대봉대(待鳳臺)는 그가 얼마나 기다림을 소중하게 생각 한지를 잘 보여준다. 봉황(鳳凰)은 새 중에서 으뜸으로 뛰어난 명성을 가진 사람을 상징한다. 봉황(鳳凰)은 오직 오동나무 위에만 내려앉고 대나무 열매만 먹고 산다고 한다. 이러한 봉황(鳳凰)을 위해 양산보는 대봉대(待鳳臺) 뒤에 벽오동을 심고, 정원 곳곳에는 대나무를 심었는데, 지금 오동나무는 고목이 되어 사라지고 없다.
이처럼 양산보는 소쇄원(瀟灑園)을 찾아온 손님을 칭송하고 부디 오래 머물다 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4각 모양의 정자인 대봉대(待鳳臺)를 지어 봉황새가 날아와 태평성대가 돌아오기를 빌었다고 전한다.
소쇄원(瀟灑園)은 비록 양산보가 은둔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지만, 봉황(鳳凰)같이 빼어난 이들이 볼품없는 자신을 찾아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별서원림이었다. 이에 하서 김인후, 송강 정철, 면앙정 송순, 의병장으로 유명한 제봉 고경명, 이황과의 사단칠정 논쟁의 주인공 고봉 기대승 등 당대의 유명 유학자들이 이곳을 찾아와 양산보와 교분을 나누고 문학과 학문을 논한 선비정신의 산실을 이루며 성리학적 이념을 자연 속에서 구현한 것이었다.
◆ 투죽위교(透竹危橋)
정천이 흐르는 계곡 사이로 투죽위교(透竹危橋)가 있다. ‘투죽위교’는 대나무로 만든 외나무다리이다. 이 다리를 건너려면 몸과 마음이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한다.
◆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梁公之廬
계곡을 연결하는 외나무다리 약작(略彴)을 건너가면 매화가 심어졌던 매대 뒤쪽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梁公之廬, 양산보의 오두막이라는 뜻)’가 하얀 벽면에 검은 글씨로 박혀있어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 오곡문(五曲門)
조형물로는 정원은 계곡을 중심으로 하는 사다리꼴 형태로 주위에는 흙과 돌로 쌓은 자연스러운 담이 있는데, 담 벽면에는 양산보의 둘째 아들 양자징이 남긴 애양단(愛陽壇)과 담장 밑으로 계곡물이 흐를 수 있도록 꾸며 자연의 풍취를 그대로 살린 오곡문(五曲門)이 있다.
소쇄원의 담장 밑에 돌기둥을 세워 물이 흐르도록 만든 오곡문(五曲門)은 물의 흐름을 끊거나 바꾸지 않고 자연의 모습을 살리는 획기적인 건축물로써 담 밖의 영역과 담 안의 영역을 이어주는 문이다.
오곡문(五曲門)이란 “담장 아래 주변의 암반 위로 흐르는 물이 지(之)자 모양으로 다섯 번을 돌아 흘러내려 간다”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오곡문(五曲門) 글씨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썼다.
오곡문(五曲門)은 소쇄원 내 북동쪽 담장에 있었던 문이었는데, 현재는 문은 없어지고 담장에 현판만 보존되어 있다.
◆ 애양단(愛陽壇)
애양단(愛陽壇)은 소쇄원에 흐르는 계곡 위에 조성한 담장으로 ‘애양단’ 구역은 원림(園林)의 입구이며 계곡 쪽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애양단(愛陽壇)이란 ‘햇빛을 사랑하는 壇)’이란 뜻으로 하서 김인후가 지은 시「소쇄원48영(瀟灑園四八詠)」에 나오는 ‘양단동오(陽壇冬午)’라는 시제를 따서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붙인 이름이라고 전한다.
애양단(愛陽壇)은 겨울의 북풍을 막기 위해 세운 단으로 추운 겨울철에도 볕이 잘 드는 해바라기 하기 딱 좋은 공간으로 “부모에게 효도한다”라는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부모의 사랑과 효(孝)를 담고 있다.
이 뜻은 “험한 세상 사시느라 고생이 많았지요. 내가 차가운 바람을 다 막아줄 테니 이제는 내 품 안에서 따뜻하게 쉬세요”라는 효심이 강한 양산보의 마음이 애양(愛陽)에 담겨있다고 전한다.
또한, 애양단 앞마당은 사시사철 햇빛이 가장 먼저 드는 양지바른 곳인데 애양(愛陽)이란 스승과 부모의 은혜에 대한 효(孝)를 의미하며, 애양단(愛陽壇) 옆에 심어진 동백은 부모님 머리에 동백기름을 정성스럽게 발라드리는 효행(孝行)의 뜻도 담겨있다고 한다.
◆ 네모꼴 연못 상지(上池)와 하지(下池)
홈을 판 고목(刳木)으로 물을 이어가는 두 개의 네모꼴 연못인 상지(上池)와 하지(下池)는 계곡물을 나무 홈과 바위 홈으로 끌어왔다. 옛날에는 두 연못 사이에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연못에는 물고기를 길러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물과 물고기에 비유하면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되돌아온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
광석은 넓은 평평한 암반으로 많은 사람이 물가에 앉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소쇄원도」에는 넓은 광석 위에서 바둑을 두고 가야금을 타는 모습이 묘사되어있다.
이처럼 소쇄원(瀟灑園)은 자연과 인공이 함께 숨 쉬는 원림 문화의 멋과 올곧은 선비들의 우아한 풍류와 절의를 품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비스러운 풍광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