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토는 굵은소금 뿌린 듯, 순백색의 물결
바람 불 때마다 하늘과 땅이 온통 하얗게 변신
[투데이광주전남] 신종천 선임기자 = 전북 고창의 학원농장에는 굵은소금을 뿌려놓은 듯 새하얀 메밀꽃이 드넓은 구릉을 수놓아 ‘팝콘을 소쿠리 채 쏟은 듯한 장관’이 펼쳐지고 있다. 봄바람에 파도타기를 하던 청보리밭이 수확철을 맞아 황금들판으로 변신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눈이 내린 것 같기도 한 광활한 메밀밭은 사방팔방으로 연이어져 이국적인 느낌의 풍경화를 나타낸다.
가녀린 붉은 줄기에 매달린 하얀 메밀꽃이 바람이 불 때마다 흐느끼듯 일렁이면 하늘과 땅이 온통 하얗게 보인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처럼. 산에 둘러싸인 닫힌 공간이 아니라 고창 메밀밭은 어디서 둘러봐도 광활한 지평선을 그리는 열린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바람 부는 날 메밀밭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 꽃멀미가 난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메밀밭은 한낮에 찾아도 좋지만 푸른 달빛이 쏟아지는 보름이나 메밀꽃이 이슬에 젖은 새벽에 찾는다면 서정적인 느낌을 한층 더 맛볼 수 있다. 이곳은 매년 9월부터 10월까지 꽃잔치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아, 산책길을 걷는 내내 하늘 위 구름을 딛고 다니는 듯한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드라마 속 연인들처럼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들도 많다.
황톳길 산책로를 따라 구릉 건너편에 서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언덕에 자리한 아담한 원두막은 학원농장이라는 풍경화를 완성하고, 학원농장의 전경을 한눈에 보려면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구릉과 구릉 사이로 뻗은 산책로 중간쯤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오는 뽕나무 한 그루가 홀로 드넓은 들판을 지키고 있다. 메밀밭은 ‘동막골 언덕’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볼 때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이른 아침이면 메밀밭과 어우러진 주변 풍광을 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사진작가와 산악회 회원, 그리고 일반 관광객까지 대거 몰려 '그림 좋은 곳'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눈치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학원농장은 처음 드넓은 구릉지대의 한 복판에서 보리농사와 콩 농사를 주로 짓던 평범한 농장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봄철 청보리밭의 아름다운 풍광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고 많은 방문객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농촌관광의 명소로 떠오르게 됐다.
청보리밭과 메밀밭으로 유명한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의 학원농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넓은 구릉지대로 보리농사와 콩 농사를 주로 짓던 평범한 농장이었다. 농장주는 고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아들인 진영호(59)씨. 대기업에서 이사까지 지냈지만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사표를 낸 뒤 농군의 길을 걸었다.
학원농장은 어머니인 이학 여사가 1960년대에 개간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뽕나무를 심어 잠업을 했으나 70년대에 목초밭으로 가꿔 한우 비육사업에 뛰어들었다. 10년이 지난 후에는 보리와 수박, 땅콩 등을 재배했으나 진영호 씨가 경관작물인 청보리를 심으면서 관광농장으로 유명해졌다. 10월 말부터는 메밀이 수확되고 그 땅에는 다시 보리종자가 뿌려진다. 보리는 겨울을 나고 초봄 푸른 싹을 틔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