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함평양민학살사건의 기억(9)
“남산뫼학살에서 큰 형이 돌아가셨습니다.” 생존자 정진억씨
2019-04-23 글 / 백은하 (소설가)
[투데이광주] 정진억씨는 1940년생이다. 1950년 12월 7일 전남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에서 7개 부락 주민 130명을 무차별 총살한 사건을 ‘남산뫼학살’이라고 한다. 남산뫼학살에서 정진억씨의 큰 형이 희생당했다.
1950년 당시, 어머니는 이미 고인이 되셨고, 아버지와 두 형 그리고 정진억씨가 월야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그날 아침 큰형은 이미 남산뫼에 집합해 있었다. 둘째형은 군인들이 마을에 불을 지르라고 하니까 마을로 불을 지르러 나갔다. 군인들이 마을로 불을 지르러 가라고 한 사람들은 15~16세 가량의 소년들이었다. 17세 이상의 마을 청년들은 그 날 모두 희생당했다.
정진억씨와 아버지는 이불을 짊어지고 월야 소재지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마을 앞에 이미 군인들이 까마귀떼처럼 밀고 들어오면서 총을 쏘아댔다. 당숙모가 도망가라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마을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정진억씨의 마을 앞 제각 맞은편에 논이 있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까 이미 청년 일곱명이 집합해 있었다. 군인들이 모인 사람들을 남산뫼로 이동을 하라고 했다.
사람들과 함께 남산뫼로 이동을 했다. 남산뫼에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총을 맞고 산처럼 죽어있었다. 큰형은 무릎에 총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불 솜을 뜯어서 큰 형의 무릎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막았다. 이불솜이 큰형이 흘린 피로 시뻘개졌다. 아버지가 “이제 피가 한방울도 안 흐른다.”고 말했다. 그의 큰 형이 대여섯 차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 당시 큰형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형의 시신을 이불로 싸서 현장에서 매장을 했다. 뒤를 돌아보니까 탄피가 설겅설겅 어마어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