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백은하 단편소설 ‘탐조등’과 ‘스카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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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6(토) 20:03
<칼럼>백은하 단편소설 ‘탐조등’과 ‘스카이캐슬’

소설집 ‘의자’ 수록, 작가의 서늘한 사회 인식

배미경 (언론학박사/더킹핀 대표)

투데이광주 today-gj@daum.net
2019년 02월 09일(토) 15:09
백은하 소설집 <의자>
“너 몰랐어? 영훈이 Y대 의대 합격했잖아. 수시 학종은 스나이퍼여야해,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고, 과녁을 정조준해서 쏘아야해. 따앙. 중학교 때까지 영훈이랑 우리아이랑 성적이 거의 엇비슷했어. 걔가 의대 갈 공부머리는 아니었거든. 그런데 고등학교 때 외고에 합격하면서 우리 아이랑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하더라고. 네가 영훈이 입시에 제일 큰 공을 세웠지.”
소설 속 주인공 현진과 그녀의 친구 수현이 주고 받는 대화의 일부다.

최근 발간된 백은하 소설집 <의자>에 실려있는 단편소설 ‘탐조등’은 수십억 원 대의 입시코디를 붙여서 서울의대 합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스카이캐슬’의 부모와 아이들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의사 아버지와 전업 주부라는 설정 또한 ‘스카이캐슬’의 예서네와 같다. 부모가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을 활용해 아들 영훈을 의대에 합격시키는 과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스토리라인 역시 일치한다. 주인공 현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훈이 의대 합격의 공모자가 된다.

현진은 시네필로(철학으로 영화읽기)라는 인문학 강좌의 강사다. 학림문화센터가 기획한 이 강좌에서 20년 만에 친구 수현을 만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수현이 신입회원으로 데려온 영훈 엄마를 알게 되는데, 그녀는 청운병원 원장의 배우자다. 둘은 중학교 반장엄마 모임을 통해 아는 사이라고 소개한다.

영훈 엄마는 강의 때마다 커피와 떡 등 간식 거리를 준해오고, 명절에 선물을 하는 등 주인공 현진을 극진하게 챙긴다. 친구 수현은 갤러리 나들이에도 영훈 엄마를 데려와 주인공과 그녀를 친밀하게 엮는 다리 역할을 한다. 1년쯤 지나 친분이 쌓일 때 즈음 영훈엄마가 “우리 병원에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쳐서 1년째 입원중인 아이가 하나 있는데, 인강으로 공부해서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 하고 이번에 수능을 치러 거점 국립대학에 합격했다며 이것이 기사가 될 수 있을까요.”하고 부탁을 건넨다.

현진은 대학 과동기자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신문사 기자 민주를 찾아가 청운병원 이야기를 전하고 기사를 부탁한다. 친구 민주는 청운병원 사모 정도가 그 정도 이야기를 했을 때는 다른 뭐가 없었겠냐며, 현진이 교수임용에서 매번 떨어진 이유를 이제 알겠다면서 생존해 있는 인류 중에서 우리집 남자하고 네가 그나마 순수한 종족이라면서 세상물정을 모르는 현진을 빈정댄다.

기분이 상했지만 현진은 영훈 엄마의 전화번호를 민주에게 건낸다. 사회면에 영훈 엄마의 남편 김선호 원장과 아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제법 크게 보도되고, 이후 ‘봉사활동하는 의사’로 미디어 출연이 잦아진다. 이후 김원장은 고등학생까지 포함한 라오스 의료봉사단을 꾸려 6개월에 한번씩 봉사활동을 나갔고, 현진과 민주를 이사로 참여시켜 아예 라오스에 학교를 건립하는 프로젝트까지 추진한다.

민주는 해외봉사활동 상황을 직접 취재 보도했다. 반신반의했던 라오스 학교가 건립되고, 학교 건물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라오스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서 현진은 착한 일을 했다는 생각에 순수한 기쁨에 차오른다.

영훈 엄마는 영훈이가 고3이 되면서 시네필로 강의를 그만둔다. 어느 날 민주가 경쾌한 목소리로 큰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면서 저녁식사에 초대 한다. 시네필로 강의가 끝나는 시간에 현진을 픽업 나온 민주는 학림문화센터 로비의 탐조등이라는 작품을 보며 말한다.

“거문도 등대 불빛이 비출 수 있는 거리가 무려 23마일이래, 23마일이면 42km야. 민주야, 사람이 42km 떨어진 곳에 서서 탐조등을 바라보고서 서서히 걸어간다면 말야. 그러니까. 42km앞을 바라보면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차근차근 실천한다면 말야, 2km 앞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하고 어떻게 다를까.” 라고 의문을 던진다.

선의로 포장된 김원장의 봉사활동과 라오스 학교, 갑자기 고가의 대형 아파트로 이사한 민주. 선한 일을 했다는 생각에 순수한 기쁨에 차올라 있던 현진이 민주의 빈정거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이미 모든 일이 끝난 후에 주인공 현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부조리의 한 공모자가 된다.

첫 방송부터 본방사수로 마지막 회까지를 숨막히게 지켜봤던 스캐마니아 중 한 사람이었던 나는 백은하의 소설집에서 ‘탐조등’이라는 단편 소설을 발견하고 그녀의 한발 앞선 사회인식에 놀랐다.

‘탐조등’이 곧 ‘스카이캐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별짓을 해서라도 성공시키겠다는 이기적 욕망이 우리사회를 얼마나 멍들게 했는지, 그리고 이런 사회적 부조리가 성장하고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든 것은 우리 모두가 공모자는 아니었을지 생각하게 한다.

‘스카이캐슬’이 현실이지만 부모라면 공모자였기에 말하기 어려웠던 우리사회의 치부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사람들은 높은 시청률로 열광했고, 반응했다. 정작 주인공 현진은 자기가 왜 영훈이 입시에 제일 큰 공을 세웠다고 하는지 영문을 몰랐던 것처럼 우리 대다수가 현진처럼 영문을 모르고 동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투데이광주 today-gj@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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